[독후감] 정대건 - 급류 (스포일러)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개인적으로 첫 문장이 기억에 남는 소설보다,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남는 소설들을 좋아합니다. 첫 문장이 아무리 기억에 남아도 결말이나 내용이 흐지부지되면 별로 안 좋은 인상이 남거든요. 반면에 내용이 좀 두서없어도 결말, 특히 마지막 문장이 인상깊으면 책 전체에 대한 평가가 좀 더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전 마지막 문장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아무리 재미없는 망작이라도 "마지막 문장을 보려고 책을 읽을"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완벽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문장도 나쁘지 않고, 전반적인 내용도 참 좋았습니다. (사실 누가 피폐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서 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치치새가 사는 숲을 본 직후라서 그런가...) 그리고 위에 써 둔 마지막 문장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두 사람이 이어지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모든 걸 극복하고 다시 재회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면서 앞으로 생길 고난들도 잘 헤쳐나가리라는 걸 암시하는 문장이니까요.
대충 줄거리를 설명해 보자면 해솔이라는 여자아이랑 도담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습니다. 도담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해솔의 어머니는 폐렴으로 자주 병원에 입원합니다. 소설은 도담이 해솔이 살던 진평으로 이사오며 시작합니다. 계곡에 빠져 죽을 뻔한 해솔을 도담이 구해주며 둘은 친해지게 되고, 둘 사이가 가까워지자 자연스럽게 해솔의 아버지와 도담의 어머니도 가까워지게 됩니다. 근데 너무 가까워졌던 탓일까요, 도담의 어머니와 해솔의 아버지 사이가 불륜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되고 결국 어느 비 오는 날 밤 둘은 계곡에서 음주상태로 물놀이를 하다 급류에 휩쓸려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일로 해솔과 도담은 멀어지게 됩니다. 이후로 해솔과 도담이 대학생을 거쳐 성인으로 성장해가며 다시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그린 소설입니다.
딱히 어려운 책도 아니고, 생각할거리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소설이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냥 재밌게 읽었어요.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마음에 드는 걸 보면 참 잘 쓴 소설 같습니다. 앞에서 생각할거리가 별로 없다고는 했지만 하나정도 꼽아보자면 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는 게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반전아닌 반전으로 도담의 아버지가 죽게 된 원인이 간접적으로나마 해솔에게 있다는 게 밝혀지는데, 해솔은 그걸 이야기하면 도담이 자신을 미워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특히 혹시나 말실수로라도 털어놓게 될까봐 술을 마시지도 않고, 항상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도담은 해솔의 그런 태도에 점점 지치고, 아마 이게 도담과 해솔의 첫 번째 재결합 이후 둘이 갈라서는 원인이 된 거 같습니다.
두 번째 만남 이후 해솔은 도담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도담은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 "내가 이걸로 너를 왜 미워하겠냐"는 말로 해솔을 용서하게 됩니다. 이걸 보며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가 분명히 나를 미워할거야', '내가 이 말을 하면 나랑 쟤는 끝일거야'라고 혼자 생각하며 내 마음을 꽁꽁 숨기기보다는 곤란한 말일지라도 먼저 이야기하고 상대와 마음을 푸는 게 훨씬 좋은 방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중간중간 곤란한 상황들이 몇 개 있는데, 전반적으로 이런 상황들을 깔끔하게 풀어낸 참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작가의 말도 울림이 있으니, 책 읽어보실 분들은 꼭 작가의 말까지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