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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장진영 - 치치새가 사는 숲

flyahn06 2026. 5. 30. 12:51


참혹합니다. 재앙이 따로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소설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입시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법한 이상의 <날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등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이런 소설들을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당 소설들 특유의 심리묘사를 좋아했기 때문이었고, 주인공을 통해 얼핏얼핏 드러나는 시대상을 파악하는게 재미있었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또한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을 이용한 문학 '작품'이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개인적으로, 문학 작품은 주제와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정한 문학 '작품'은 주제가 아무리 불쾌할지라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글 속에 잘 녹여 읽는이로 하여금 주제를 직접 깨닫고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위에 써 둔 소설들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불쾌한 주제를 아무 여과없이 늘어놓는 건 일기장에나 할 일이지, 절대로 문학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받고 팔 건 아닙니다.

이 소설은 부모의 무관심이 아이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그 무관심이 아이의 '사랑'에 대한 관념을 어떻게 비트는지, 마지막으로 그 비틀린 '사랑'에 대한 관념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그린 소설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이 출판될 당시에는 그루밍 성범죄가 매체에 많이 등장하던 시기니 작가가 이 주제를 선택한 것도 이해할만 합니다. 그루밍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라면 꽤나 좋은 주제입니다.

문제는 내용입니다. 이 글의 중반부터는 이게 일반적인 소설인지 야설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천박해집니다. 문학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롭지만 완곡한 표현들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오로지 적나라한 묘사와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아무 맥락 없이 나열되어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독자는 글의 표현만에 집중하고 글에서 오는 충격을 처리하기 바빠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없게 됩니다. 과격한 표현으로 독자의 생각을 막고, 결국 작가와 독자간의 소통이 중단되는 것입니다.

이런 휘몰아치는 내용을 정리해줄 수 있는 작가의 말도 난해합니다. 책을 읽으면 항상 작가의 말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내용을 되돌아보는데, 이런 식으로 (물론 고심해서 쓴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대충 쓴 작가의 말은 독자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내용보다는 책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 작가의 의식만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독자는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가의 말은 정말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후로 한국 소설의 표현들이 너무 적나라해지고 과격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의 파괴적이고 영양가없는 양산형 소설 대신, 예전의 감동과 울림이 있는 소설들이
현대의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글을 담은 소설 대신, 예전의 날카로우면서 부드러운 표현을 담은 소설들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